나는 서울의 한 중하위권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다. 상경계열을 복수전공했지만, 정작 그중에서 배운 건 '내가 이 분야와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글씨가 둥둥 떠다녔고, 시험지는 항상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낮은 학점으로 졸업했다. 사기업에 취업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가진 게 없었으니까.
졸업은 했는데, 갈 곳이 없었다. 채용사이트의 '간편지원' 버튼을 수십 번 눌렀다. 영업 관련 직군만큼은 피했다. 발음이 선명하지 않고, 사회성이 부족한 내가 영업을 할 거라는 상상은 자조에 가까웠으니까.
대기업 공채도 도전했다. 필기시험은 대부분 떨어졌고, 간신히 통과해도 1차 면접이 마지노선이었다. 2차 면접이라는 문턱은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다.
취업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건 더 고통스러웠다. 남는 시간이 많아진 어느 날, 도서관 구석에서 운명탓을 하려고 사주명리학 책을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 때우기였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운명의 구조를 읽어내다 보니 나는 혼자 사주를 익혔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블로그에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마지막 간편지원이었다. 중간규모 회사의 서비스 기획팀이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나니, 입사일까지 정확히 3주의 여유가 주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공기업, 다른 대기업의 면접을 더 봤다. 매번 "이번엔 다를 거야"라며 정장 구김을 살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나는 이미 추가 탈락을 더 경험한 채로 첫 출근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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