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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웹서비스기획자의 일상

9명 중 최하위, 6년 차의 고백

by 심리인 2026.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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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그 이메일을 지우지 못했다. 2019년 4월, '19년 상반기 실적 평가 안내'라는 제목으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이 무겁게 떨어졌던 그 메일을. 12.5점.
전체 평균을 맞추기 위해 임원 재량으로 조정된 점수. 그리고 실장의 한 마디. "주임의 업무 평가는 9명 중 최하위입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직도 그 9명 안에 갇혀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나는 별로 큰 꿈이 없었다. 어중간한 대학, 평범한 높지 않은 학점. 취업 시장에서 돌아온 건 수십 번의 자동 지원과 중견기업 공채의 무디고 반복적인 거절뿐이었다. 
그러다 겨우 손에 쥔 곳이 X사였다. 나는 2순위였다. 1순위가 다른 기업을 선택하면서 나는 대안이었다.
입사 첫날부터 그랬다. 팀장은 다른 지원자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인사는 나를 밀어붙였다. 그래서 나는 팀장의 눈밖에 났는지 입사일은 두 주일이나 미뤄졌고, 첫 주는 할 일 없이 매뉴얼만 봐야 했다. 
일의 시작이 이미 불편했던 사람. 그렇게 내내 나는 그 불편함을 견뎌내는 법만 배웠다.
그러다가 그 메일이 왔다. "그룹웨어, 메신저, 보고서에서 보이는 이슈 대응 방식이 아직 성숙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처리'가 아니었다. '신뢰감을 주며 인정받는' 것. 즉, 해결 과정을 보여주며 동시에 남들에게 평가받는 영향력이었다. 
나는 3,200여 건의 물류 데이터를 수기로 정정했고, 욕설을 들으며 고객 응대를 해결했지만, 그것들은 '특별 가점'에 해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처리'했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날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인정받는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들의 언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2019년 5월, 나는 그곳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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